이 글은 2021년 7월 루바토 블로그에 쓴 ‘스스로 와린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포스팅 글을 현 시점에서 보완한 글입니다.
당시에는 루바토를 운영하면서 느낀 것들을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이후로는 와인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참석자를 대상으로 와인 클래스를 진행하고, 미슐랭 소믈리에로 일하면서도 비슷한 상황을 현장에서 수없이 마주했습니다.
(매장 안)
자리에 앉으신 손님에게 와인 리스트를 가져다드립니다.
그리고 와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말씀드립니다. 한참 동안 리스트를 골똘히 보시던 손님이 조심스레 한 마디 하십니다.
“제가 와인을 잘 몰라서요…”
손님 10팀 중 7~8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것들을 (잘 알았어야 하는데) 모르네, 라는 표정과 목소리로 멋쩍은 듯 말씀하시는 거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모른다고 나 무시하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매장 직원이 무조건 비싼 와인을 추천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해당 업계에서 종사하며 일반적인 경력을 쌓고 있고,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다면 너무 당연하게도) 이런 경우 무척 신이 납니다. ‘어떤 와인을 소개해야 정말 맛있었다며 행복해 하실까?’ 함께 고민하면서 가슴이 막 설레는거죠.
그런데 이건 소믈리에 입장에서, 와인바 사장 입장에서 와인을 잘 알아서 그런거 아니냐고요? 흐음… 사실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해 볼까요?
그 누구도, 모든 와인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그런 스타일이겠거니…
짐작하는거죠.이 발언에 상당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저는 보통 이 세상에 와인은 도로명 주소만큼이나 많다고 표현합니다.
골목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도로명 주소 아시죠? 모든 주소들 ‘도로명’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11, 12, 13 혹은 11-1, 11-2 이런 식으로 숫자도 모~두 다르잖아요. 그것뿐인가요. 아파트 동과 층수가 다르고 호수도 다 다릅니다. 내가 ㅇㅇㅇ아파트 1101호를 가봤다고 해서 1201호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앞동과 뒷동이 다르고 옆 단지는 또 다릅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집에서 나는 향기와 정리정돈 상태, 가구와 조명 색깔, 침대 시트가 어우러져 저마다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집은 아이를 키우며 거실에 장난감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을 수 있고, 그 옆집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싱글이 살 수도 있잖아요. 침실 창문이 남향인지 북향인지에 따라 해가 방에 들어차는 시간과 분위기, 커튼의 두께까지 모두 다릅니다. 이 정도 비유면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되시죠?
물론 이 모든 걸 25평형 아파트와 34평형 아파트로 묶어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ㅇㅇ푸르지오, ㅇㅇ롯데캐슬, ㅇㅇ래미안과 같은 브랜드 이름으로만 동네를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집들이 각자의 주소와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조금만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유명하다는 레스토랑, 와인바를 방문했는데 –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것이 아닌 이상 – 일반 소비자인 내가 한번쯤 들어본 와인이 리스트에 있다면, 오히려 고개를 갸웃?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곳은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나 철학이 반영된 큐레이션이 아닌 그냥 ‘적당히 알려진’, ‘마케팅 잘 된’ 와인을 리스트업 해 놓은 곳일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이걸 무조건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상권과 주 방문객들의 소비 형태에 따라 이런 방식이 꽤 전략적인 선택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 그럼 이 이야기의 결론은 “어차피 아무도 모르니 알 필요 없다”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상태가 아니라 그냥 출발점입니다. 리스트를 건네는 사람도, 그걸 받아 든 사람도 모른 채로 시작하는 건 똑같습니다.
다만 한쪽은 해당 와인을 ‘먼저 마셔봤을 뿐’이고 관련된 일을 매일 하다 보니 ‘모르는 채로 짐작하는 것’까지 익숙해졌을 뿐이죠.
더 쉽게 말하자면,
본인이 마셔 본 것만 팔기 때문에 ‘잘 아는 것’이고, 혹여나 직접 마셔 보지 않았더라도 25평 집은 이 정도 크기, 34평은 이 정도, 이 동네 아파트 ㅇ호 라인은 방이 몇 개 있고, 이쪽 동네는 언덕이 가파르다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겁니다.
그렇기에 와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은 주눅들 상황이 아니라 정보에 가깝습니다. 앞에서 제가 이런 손님을 만나면 신이 난다고 했던 게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함께 찾아볼 여지가 그때부터 열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매장 안)
도대체 와인에 대해 뭘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인지..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알아야 하는 건 와인이 아닌 ‘오늘의 나’입니다.
오늘 어떤 메뉴, 또는 어떤 스타일의 와인이 끌리는지. 누구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할 예정인지, 최근에 마신 와인이 좋았는지/싫었는지. 이건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매한 결정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하게끔 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질문 하나만 바꾸면 됩니다.
어떤 와인이 맛있나요?
오늘, 무슨 와인을 마시는 게 좋을까요?
앞선 질문은 세상의 모든 와인을 놓고 정답을 요구합니다.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죠.
뒤의 질문은 오늘, 이 자리, 이 음식, 이 사람과 함께로 범위를 좁힙니다. 그 순간 리스트에 있는 백 가지 이름은 서너 병으로 줄어듭니다.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되는 겁니다.

맛이란 전적으로 경험적입니다
처음 마시는 술에 대한 현학적인 설명이 머릿속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지만 직접 내 입술에 갖다 대기 전까지 우린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우린 왜 와인 이름만을 보고 이미 ‘알았어야’하고 모르면 ‘공부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나는 이 맛을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란 역설적이게도 그날의 음악과 조명, 입술에 닿은 와인잔의 촉감과 온도, 마주 보는 사람의 눈빛과 함께하는 음식. 그 밖에 순간적이고 추상적인 수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으며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내어 재창조한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결국 와인에 대한 경험과 기준이란 상대적이고 상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와인 리스트 앞에서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좌표를 공유하는 일 하나면 충분합니다.
(매장 밖 – 파전 집)
비가 오는 저녁,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러 갔습니다.
다양한 막걸리가 메뉴판에 있고 함께한 지인들과 왁자지껄 뭘 마실지 고민할 때, 막걸리의 양조 방식과 생산지, 탁함과 당도 등을 이미 잘 알고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고 나서야 한 마디씩 합니다.
“너무 달아”, “조금 텁텁한데?”, “난 괜찮은데? 여기 파전 맛있다.”
그 자리에서 누구도 스스로를 ‘막걸린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시고, 말하고, 다음 잔을 고릅니다. 그게 전부죠.
와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명하다고 하는, 잘 알려진 와인을 도장깨기 하듯 하나씩 시도해 보는 즐거움도 있고, 누군가는 포켓몬 카드처럼 공들여 모으기도 하고, 이것 저것 다 해 보니 ‘이제는 그게 그거겠거니’ 했는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와인 한 병을 만날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는 겁니다.
점(.)과 같은 수많은 경험이 모여 하나의 선(-)을 만듭니다. 와인을 좋아한다는 전제만 같다면 우리는 모두 그 선 위에서, 각기 다른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와린이라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잔을 든 그곳에 우리가 함께 서 있습니다.